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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자리를 만들어 줄 테니 아내를 버려라

기사입력 2020.08.1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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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광교원장(한국노사법률원)


    좌의정 신수근은 연산군 시절 권력의 핵심이었다.

    그의 누이는 왕비이고, 그의 딸은 진성대군의 아내였으니 권세가 알 만하다.

    박원종은 군사를 도모하기 직전에 신수근을 찾아갔다.

    평소처럼 장기를 두다가 지나가는 듯 넌지시 한 마디 건넸다.

    “대감에게는 누이가 중요합니까? 딸이 더 중요합니까?”

    신수근은 박원종이 어떤 뜻으로 물어보는지 알아챘지만 망설임 없이 답했다.

    “지금의 임금이 포악하기는 하나 세자가 총명하니 그리 걱정하지 않소.”

    박원종은 속으로 “틀렸다. 이 자와는 함께 할 수 없구나.”라며 탄식했다.

    돌아온 박원종은 반정을 일으켜 불과 몇 시간 만에 연산군을 장악해 버렸고 신수근도 죽여버렸다.

    그런 후 연산군 대신 진성대군을 왕으로 내세웠으니 곧 중종이다.    

    당시는 ‘연산군만 아니면 된다’는 분위기였으니 중종은 피 한 방울 손에 묻히지 않고 로또처럼 갑자기 왕이 된 것이다.

    문제는 중종의 아내가 신수근의 딸로, 더불어 왕비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박원종은 중종에게 왕비를 폐출하라고 압박했다.

    중종은 왕좌와 아내, 둘 중 하나는 버려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아내는 13살에 시집을 와, 당시는 20세로 한 살 연상이었다.

    박원종이 반정에 성공하여 진성대군의 집으로 군사를 보냈을 때 진성대군은 연산군이 자신을 죽이려는 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

    이때 아내가 “군사들의 말머리가 우리 집 대문을 향하고 있다면 잡으러 온 것이요, 반대라면 우리를 지키러 온 것입니다.”라며 밖으로 나가 살펴본 후, 대문 틈으로 말꼬리가 보이는지라 문을 열어 군사를 맞이했을 정도로 침착하고 현명한 여인이었다.

    하지만 박원종의 위협으로 7일 만에 왕비 자리에서 쫓겨나니, 여자의 입장으로 본다면 남편은 왕이 되었지만 자신은 쑥대밭이 된 친정과 함께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고 만 비운의 시작이라 하겠다.

    야사에는 중종이 경회루에 올라 먼 산을 바라보며 아내를 그리워하니 폐비도 자신의 붉은 치마를 경회루에서 잘 보이는 인왕산 바위에 널어 두었다는 둥, 중종이 말년에 폐비를 궁에 들였다는 둥 여러 말이 있으나 실록에는 폐비 과정에 담담하게 임했던 중종의 모습만 적혀있을 뿐이니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요즘 민주당 당권을 놓고 후보 아내의 큰 오빠가 사상에 문제가 있다고 떠들자 그는 아내와 헤어지란 말이냐며 반발했다고 한다.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 과정에서 아내 집안의 좌익전력으로 코너에 몰리자 “그럼 나더러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고 했는데 이는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 되어 결과적으로 득이 되었다는 평도 있다.      

    이번에는 어떤 결과를 맺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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