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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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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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야

 낙양지귀(洛陽紙貴) 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낙양 땅 종이 값이 크게 오른다’라는 말인데, 책이 널리 세상에 퍼져 애독되거나 저서가 호평을 받아 매우 잘 팔린다는 뜻으로 쓰인다.
 여기엔 재미있는 얘기가 숨어있다.

 춘추시대 임치 땅에 좌사(左思)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못 생겼으며 말도 더듬었다.
 더구나 머리도 둔하여 글을 가르치면 금방 돌아서서 곧 잊어버릴 정도로 공부가 한심했다.
 아무리 가르쳐도 글자가 비뚤비뚤하고 뜻도 제대로 모르는 아들에게 실망을 한 아버지가 어느 날 동네 사람들에게 말했다.
 “아무리 내 아들이지만 이렇게 멍청할 줄은 몰랐소. 나는 도저히 못하겠으니 누구든  내 아들놈을 가르쳐주면 고맙겠소.”
 아버지의 이 말에 동네 사람들은 조롱하며 웃었고 좌사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때부터 좌사는 마음을 굳게 먹고 열심히 공부에 임했다.
 말 그대로 날마다 숨만 쉬고 책만 보았다.
 그렇게 노력한 보람이 있어 그의 문장은 점차 인근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그러다 그의 여동생이 궁중에 들어가게 되는 일이 생겨 좌사도 임치를 떠나 함께 낙양으로 올라왔다.
 낙양 땅은 과연 넓고 번화하며 사람들로 넘쳐났다.
 좌사는 뛰어난 문사가 기라성처럼 많은 중앙 무대의 분위기에 자극을 받았다.
 그는 이곳에서도 자신의 문장을 펼치고 싶었다.
 하여, 장대한 글을 지어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후세에 길이 남을 작품을 발표하겠노라고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작품의 소재로 삼도부(三都賦)를 삼았다.
 ‘삼도’란 삼국 시대의 위나라 서울 업(?), 촉나라 서울 성도(成都), 그리고 오나라 서울 건업(建業)을 뜻한다.

 그즈음 글 잘 짓기로 이름난 육기라는 사람이 좌사의 얘기를 듣고 손가락질을 했다.
 “낙양에 좌사라고 하는 어리석고 못난 자가 있다. 그 자가 제 분수를 모르고 감히 시문을 쓸 생각을 하고 더구나 삼도부까지 쓰려한다니 이건 개도 웃을 일이다.”
 좌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곤 묵묵히 작품에 몰두했다.
 그는 여동생의 도움을 받아 궁중에 보관되어 있는 각종 문헌을 모두 읽어 학문적 시야를 넓혔다.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드디어 십 년 만에 삼도부를 완성했다.

 처음에는 작품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화(張華)가 좌사의 집에 찾아왔다.
 좌사는 기회다 싶어 삼도부를 내놓았다.
 중앙 문단에서 이름을 날리는 시인이었던 장화는 이를 읽어 보고 격찬해 마지않았다.

 이때부터 좌사의 삼도부는 낙양의 화제가 되었다.
 글을 읽는다는 사람들은 지식인 반열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앞 다투어 삼도부를 베껴다 읽었다.
 그 바람에 낙양 안의 종이가 갑자기 동이 나서 종이 값이 폭등하였으니 이를 두고 사람들은 낙양지귀라 했다.

 우리나라는 매년 단행본 기준으로 사 오만권의 책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정작 낙양지귀로 불릴 만한 베스트셀러는 손으로 꼽는다.
 이는 어느나라든 마찬가지인데 요즘 이웃 일본에서는 희한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독서가를 판치고 있다고 한다.
 바로 한국을 비판하고 야유하는 이른바 혐한(嫌韓)서적들이다.
 올 들어 신간 논픽션 부문 주간 베스트셀러 톱 10 가운데 '어리석은 한국론' 이라는 뜻의 매한론, 모일론, 거짓말투성이의 일·한 근현대사 등 혐한 서적 3권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런 책들이 낙양지귀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극우로 치닫는 일본의 요즘 행태에 일부 지식인들이 상술로 맞장구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선진국이란 말 듣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새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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