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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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인사국무조정실· 국무총리비서실 국장급 인사 소통메시지비서관 김 철 휘 채용 평가관리관 김 희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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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24시콜화물 윤수명 대표 인터뷰<사진제공 = 인천시 남구청> ㈜전국24시콜화물 윤수명(56) 대표는 추석을 맞아 28일 저소득계층에게 전달할 ‘사랑의 쌀’ 2천200포(10kg)를 인천 남구청에 전달했다. 남구 도화2동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윤 대표는 추석에 이어 내년 설에도 사랑의 쌀을 전달하는 등 매년 정기적으로 쌀을 기탁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경상북도 문경 출신인 윤 대표는 그의 나이 29살 무작정 인천으로 상경했다. 가진 것도 없고 별다른 기술도 없었던 윤 대표는 인천의 한 이삿짐센터 인부로 일하면서 하루하루 힘겨운 생활을 해야 했다. 윤 대표는 “어렵게 살던 시절 가장 서러웠던 때는 명절이었다”며 “남들이 명절 음식 준비로 한창 분주할 때 나는 어린 아들과 아내의 끼니를 해결할 쌀을 어디서 구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해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쌀만큼 든든한 선물이 없다”며 “그래서 돈 보다는 2천200포의 쌀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지난해부터 이날 현재까지 인천재능대 야구부 창설 지원금 1억원, 박태환 수영장 기부금 1억원 등 총 3억원에 가까운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올해말까지 5억원, 평생 200억원을 기부한다는 중·장기 목표까지 세워 놓고 있다. 특히 윤 대표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부진으로 침체된 도화2·3동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도화2·3동 주민센터 한켠에 마련된 ‘사랑의 뒤주’에 쌀이 비었다는 소식을 접하면 즉시 쌀 200~300포를 보내 뒤주를 가득 채우고 있다. 또 올해 가을에는 배추 1천포기를 구입해 김치를 저소득층에게 전달할 예정이며, 도화2·3동의 화합을 위한 제1회 동민 체육대회 개최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어려웠던 시절 먹지 못해 영양실조도 걸려봤고, 월세방 주인집이 삽겹살을 굽는 날이면 어린 아들이 사달라고 졸랐지만 사주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도 느껴봤다”며 “이 같은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나설 것”이라고 약속했다. 한편 윤 대표는 지난 2010년 화물차 기사와 화주를 직거래로 연결하는 네트워크와 앱을 개발, ㈜전국24시콜화물을 현재 회원수 5천300명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전국24시콜화물은 현재 30만명이 동시에 접속 가능한 자체 서버를 운영하고 있으며 전주, 충주, 여주 등 전국 곳곳에 화물차 기사의 샤워와 수면이 가능한 무료 휴게소를 운영하는 등 화물 알선 분야의 독보적인 업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국제 품질경영시스템인증인 ISO 9001:2008을 비롯해 국토교통부의 우수화물정보망 인증을 획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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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A 경력단절여성 재취업 성공기 인터뷰<사진제공 = 인천항만공사> 이번 IPA 얼굴들은 특별히 인천항과 함께할 뉴~페이스의 이야기를 담아보았는데요. 2014년 정규직 연계형 고졸인턴으로 당당히 합격한 ‘강언덕’씨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자연친화적인 이름만큼이나 포~근한 인상의 소유자인 고졸인턴 강언덕씨를 만났습니다. Q. 먼저 2014년 인천항만공사 상반기 신규직원채용에 합격하신 것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지원동기를 안물어볼 수가 없겠죠? A. 안녕하세요. 강언덕입니다. 축하해주셔서 감사하고, 인터뷰 자리가 굉장히 황송하고 쑥스럽네요. 제 나이가 30대 초반인데, 신규직원 치고는 나이가 많은 편이죠? 심지어 결혼까지했고 아이까지 있습니다. (웃음웃음) 아이가 어느정도 크고 재취업을 결심하게 된 뒤 저와 비슷하게 아이를 키우며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과 스터디를 하던 중 인천항만공사의 채용 공고를 보고, 준비하여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Q. 아 정말 독특한(?) 이력인 것 같아요. 보통 신규직원과는 다른 행보를 걸어왔네요. 경력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A. 20대 초반부터 직장생활을 해오다 결혼을 하게 되었고, 결혼 후에도 일을 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기가 생기고 육아와 사회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들어 불가피하게 직장을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가정에서 가사와 육아 활동만 하다보니 사회생활에 익숙한 저는 솔직히 조금 답답하기도했어요. 하지만 엄마로써 아내로써의 역할도 중요하기 때문에 ‘아이가 클 때까지는 재취업을 미루자’라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재취업을 결심한 뒤 먼저 주변에 저와 비슷하게 아이를 키우며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과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영어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공무원 및 공사 입사정보를 공유하다가 인천항만공사의 채용 정보를 알게 되었는데, 정규직 연계형 고졸인턴 항목에서 우대사항으로 ‘경력단절여성인 자’ 항목이 있어서 망설임없이 지원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경력단절여성이란, 임신·출산·육아와 가족구성원의 돌봄 등으로 인해 경력 단절기간이 1년 이상인 여성을 뜻하는 것이었는데 우대사항을 확인했을 때 딱 ‘나만을 위한 특급 채용 공고’같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구요. 합격 소식을 듣고 나서는 굉장히 기뻤습니다. Q. 경력 단절 후 재취업을 함에 있어서 혹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A. 제가 공백 기간을 가지게 된 주된 이유가 자녀 양육이었는데 이 때문에 입사를 준비할 때도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지 않아 조금 힘들었습니다. 보통 둘째 아이가 자는 시간이나 새벽 시간을 쪼개서 공부를 하고 입사 지원 준비를 했어요. 그리고 입사를 하더라도 걱정되는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더라구요. 저는 기혼자에 아이까지 있어서 입사동기들과 공감대가 부족하거나 조금 어울리기 힘든 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과 퇴근 후 직장 동료들과의 단합이 육아와 가사일로 힘들지는 않을까 하는 점 등이요. 하지만 인천항만공사의 근무조건은 고졸인턴의 경우 정규직 전환시 단시간 근로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다가왔습니다. Q. 강언덕 인턴처럼 경력 단절 기간 중에 재취업을 준비하고 계시는 여성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A. 현재 본인이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집에 있다고 해서 스스로가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위축되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아이는 엄마가 직접 키워야 잘 큰다는 생각이 워낙 보편적이기 때문에 육아로 인해 저처럼 직장을 그만두시는 분이 많은데요, 물론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것도 좋지만 본인 스스로가 이루고 싶은 꿈과 열정을 갖고 있다면 그걸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재취업을 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좀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 마음을 먹고 부딪혀보면 그렇게 힘들지 않아요. 관련된 정보를 공유 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들도 굉장히 많이 있고요. 재취업을 준비하는 경력단절 여성분들 모두 원하는 결과 이뤄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IPA 얼굴들 뉴페이스편! 경력단절여성 강언덕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는데요. 결혼 후 육아 때문에 퇴사를 하게 되어 4년이라는 경력 단절의 시간이 있었지만 당당히 합격하여 이제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게 될 취업 성공 스토리가 대한민국의 모든 경력단절여성에게 한줄기 빛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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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장석현 남동 구청장 당선자 소감<인천 남동구청장 장석현 당선자가 당선 소감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있다./사진제공=국제연합뉴스사 박영문기자 5일 6.4 지방선거 남동구청장 선거 개표 결과 새누리당 장석현 후보가 당선 되었다. 장석현 당선자는 (50.3%)의 득표율로 정의당 배진교(39.8%) 후보를 누르고 남동구청장에 당선이 됐다. 현장에 나가있는 박영문기자의 인터뷰를 들어보자 <박영문기자> 6.4 지방선거 인천 남동 구청장으로 당선이 확정 되셨는데 당선 소감 한 말씀 부탁 드리겠습니다. <장석현 인천 남동구청장 당선자> 부족한 저에게 보내주신 큰 사랑과 믿음으로 민선6기 남동구정의 막중한 책임을 남동구민께서 맡겨주셨습니다.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저를 선택하신 것은 변화와 희망을 열망하면서 꿈과 희망! 그리고 기회의 땅인 남동구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한 구민 한분 한분의 간절한 염원이라 생각합니다. 저가 정성과 힘을 다해 남동구정을 이끌어 나가겠습니다. 남동공단에서 경영을 했던 정신으로 답은 경영이라는 사명으로 남동구정을 이끌겠습니다. 직접 현장을 발로 뛰며, 사랑하는 우리 남동구의 발전과 구민 한분 한분의 행복한 삶을 열어 가는데 혼신을 다할 것입니다. 우선 선거로 흐트러진 구민들의 마음을 모을 것입니다. 우리는 남동구민으로 하나입니다. 그리고 선거기간 약속한 일자리 창출! 복지! 삶의 질 향상!을 통한 최우수 도시로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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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도형 인천시의회의원 후보<이도형 계양구 (효성1,2동)시의원 후보가 유권자들께 당부하고싶은 메세지를 남기고 있다./사진제공=박영문기자> [인터뷰 변재헌 기자] 6월4일 선거가 이틀도 남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역 유권자분들께 당부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도형 인천광역시의회 의원 후보] 저는 계양구 1선거구 인천시의원 효성1,2동 지역구를 두고 있는 이도형 후보입니다. 우리 효성동 지역 유권자 여러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동안 열심히 일한 후보 그리고 공약과 실천가능성 더 나아가서 우리 효성동 발전을 위해서 더 일할 수 있는 일꾼을 잘 살펴보시고 투표에 꼭 참가하셔서 소중한 우리 지역에 일꾼을 뽑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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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본수 인천교육감후보<이본수 인천광역시 교육감후보가 이틀 앞둔 6.4지방선거에 앞서 유권자들에게 당부하고있다./사진제공=박영문 [인터뷰-변재헌기자] 6월4일 지방선거가 이틀도 남지 않았습니다. 유권자 분들에게 꼭 당부 하고싶은 말씀 있으면 부탁 드리겠습니다. [이본수 인천광역시 교육감후보] 중대한 결정의 순간입니다. 지금까지 쌓여 왔던 만성 병적인 인천 교육의 상태를 완전히 새롭게 치유할 수 있는 상황에 들어가느냐 마느냐 그런 기로에 서 있는데 그게 교육감을 누구로 선택하느냐에 달려있죠 그럴만한 능력과 경륜과 철학을 갖춘 사람을 선택 해주십사 하는 부탁을 드리고 그럴 여면 선거 공보도 잘 비교해보시고 그 안에 들어있는 정책 공약도 보시고 그분의 경력도 보시고 세금을 얼마나 냈는지 재산 상황은 얼마나 되서 먹고 살만한지 뭐 이런 것들을 골고루 봐서 적임자를 골라 주십사하는 부탁을 들어야겠어요. 더군다나 전교조하셨던 분들이 이 일을 맡는다고 그러면은 서울에서도 그렇고 경기에서 그렇고 상당히 너무 빠른 급진적 개혁 때문에 학생이 선생님이 적응하지 못하는 불편이 있었죠 다시 바로 잡아야 되니까 굉장 많은 노력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골고루 잘 보시고 현명한 판단을 해 주셔야 된다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고 사표가 생기지 않게 하시려면 그동안에 앞서가던 후보를 잘 눈 여겨 보시고 특별한 결함이 없으면 앞서가던 후보에게 표를 몰아서 확실하게 당선되도록 밀어주는 건 어떨까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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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학수 전 농림부 차관정학수 전 차관이 고창발전의 비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창군수 출사표를 던진 정학수 전 농림부 차관. 그를 인터뷰하러 가던 도중 취재진은 조류인플루엔자 방역을 실시하고 있는 김제와 정읍의 도로를 거쳐 갔다. 마음이 심란해 짐은 어쩔 수 없었다. 고창으로 들어서는 순간 드넓게 펼쳐진 황토들판을 만났다. 고창땅의 풍요로움을 간직하게 해준 붉은 황토흙들. 그를 만나는 순간, 정 차관이 황토빛을 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고창발전을 위해 가진 꿈은 무엇일까 또한 궁금해 졌다. ◆고창 수재에서 농림부 차관까지 정 후보를 만나기 전에 그의 이력을 살펴보았다. 1954년 갑오년 생이다. 6.25 전쟁이 끝나고 태어난 세대여서 전쟁의 폐허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6남2녀로 태어난 정 후보는 그래서 우리 부모세대가 겪었을 대부분의 시련을 겪었다. 그것을 다시 나열하는 것은 사족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고창초, 고창중, 고창고를 졸업했다. 그는 가난과 시름하며 공부에 파묻혀 살았다. 성적표에는 ‘수수수수수’가 가득했고, 전교1등을 놓치지 않았다. 재수를 했고, 고려대 법과대학을 입학했다. 재수 시절 겪은 좌절과 고통은 훗날 그가 있게 한 씨앗이 됐다고 술회하고 있다. 미국텍사스A&M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중앙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행정고시에 합격해 농림부 농지과장, 기획예산담당관,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농촌개발국장을 지내고,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원장을 맡았다. 이후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으로 공직을 마쳤다. ◆고향은 내가 갚아야 할 은혜의 땅 -출마동기는 무엇인가. →지난 31년 동안 농림부에서만 공직생활을 해 왔다. 전국 400만 농어민의 마음과 입장에서 일했다. 그리고 언제나 마음속에는 고향인 ‘고창’을 잊지 못했다. 언젠가는 나를 키워준 고향사람들과 부모, 형제들에게 은혜를 갚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다. -2012년도에 귀촌을 감행했다. 실제 고향에 내려와 살아보니 어떤가. →내가 학교 다닐때는 인구가 18만명이나 되는 큰 군이었다. 지금은 6만으로 줄어들었고, 그것마저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 지역상권이 위축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65세 이상이 27%나 되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고민이 많다. 그러나 선진국의 농어촌도 비슷한 상황을 겪다가 도시민의 유턴으로 공동체가 회복되는 사례가 있어 희망을 가져 본다. -‘희망’ 참 좋은 말이다. 고창의 발전 가능성을 보았단 말인가. →그렇다. 고창은 청정한 자연환경과 많은 문화와 자연유산을 가지고 있다. 지역 주민들도 부지런하고 뭔가 새로운 일에 매달리려는 도전욕구도 강하다. 동학혁명의 출발지도 고창이다. 고창의 미래 희망은 새로운 농어업, 생태관광, 전통문화의 재생 등에서 만들어 질수 있다고 생각한다. 10년 후 고창이 매일 평균 10만명이 머무르는 경제생활권으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농림부에서 31년간 생활했고 농림부 차관을 지냈다. 고창농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농어업, 관광산업, 문화산업은 일자리 창출효과가 큰 산업이다. 농어업은 단순히 농수산물을 생산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식품가공, 자재생산, 체험관광, 민박 등 전후방으로 연관된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산업이다. 재능은 있으나 자본이 적은 사람들이 모여 일자리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기업을 많이 만들어 가면 다양한 일자리가 만들어 질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일자리 창출과 귀농.귀촌인력들의 유치를 통해 인구를 8만명으로 늘리고 나머지 체류하는 관광객을 2만명으로 늘리면 10만명의 경제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농림부 시절 가장 기억나는 일은 무엇인가. →농지개혁법을 제정한 일과 농가부채를 해결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1994년 농지법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에 상정 처리됐다. 이로써 농지개혁법이 제정된지 45년 만에 농지에 관한 기본법이 만들어 진 것이다. 그동안 농지법은 서로의 이념과 이해관계의 상충으로 표류해 왔다. 내가 주무과장이 돼 비로소 입법했다는 커다란 성취감과 자부심을 갖게 됐다.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IMF 사태이후 농가경제가 급격히 나빠졌다. 농자재 가격은 오르는데, 농산물 가격은 내려 농가부채가 심각해 졌다. 언론에도 농가부채 탓에 농민들이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가 많이 났다. 2000년 농림부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농어촌부채특별법을 만들어 16조5천3백억원을 농어가 부채해결을 위해 지원했다. 저리 장기상환 등 농어민의 회생에 최대한 초점을 맞추어 지원했고, 연대보증의 폐해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고창의 서녘으로 해가 넘어갈 즈음 우리의 인터뷰도 끝이 났다. AI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을 농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진다는 그의 말이 심금을 울린다. 아직 정치에 익숙지 않은 순수함 때문이지 정치적 수사보다는 고향에 대한 애정이 먼저 앞서곤 했다. 좀처럼 속내를 내보이지 않는 주민들 때문에 애간장이 타들어 간다며 너스레를 떠는 정 후보. 자타가 공인하는 농림부의 기획통으로 인정받고 있는 정 전 차관. 황토밭 고창을 누비고 있는 정 후보의 열정만큼이나 석양이 아름답게 빛났다.